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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 반기문 UN 사무총장

blabla | 2009/12/28 09:17 | 소나무같은사람

내가 써놓고, 다른 사람 블로그에서 퍼온 글.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서 지우고 또 지웠더니 이런 지경에 이르는군. 끙.
요즘은 왜 이런 필력이 안나오는 것인지. 매일같이 인생타령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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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약 45년 후 지구촌의 재상, UN 사무총장이 됩니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좋아해서 영어문장을 통째로 암기했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후 외교관의 꿈을 키워온 이 소년이 훗날 반기문 UN 사무총장으로 불기게 됩니다. 2007년 1월 1일부터 정식 사무총장의 임기를 시작하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피선은 우리 역사에 전대미문의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민족이 이 땅에 발 붙이고 살아 온 세월이 반만년입니다. 그 반 만년 동안 한 번도 세계의 중심이 되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세계를 대표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외세의 침공에 시달렸고, 급기야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당하는 등 억울한 양민들의 피가 강산을 뒤덮는 세월의 연속이었습니다.
1950년 6.25 발발로 인해 국토가 초토화 되었고, 그로부터 38년 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여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화합의 장을 열었고, 다시 20년 후 우리나라 사람이 전세계 분쟁과 갈등을 조절할 수 있는 조정자가 되었습니다. 새삼 대단한 사람, 대단한 민족, 대단한 나라라는 자긍심이 생깁니다.

1. 외교관이 되기까지

반기문 사무총장은 1944년 충북 음성에 태어났습니다. 50년대 말 창고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기 전까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아버지가 정미소에서 일하는 등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는 보통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좋아하여 ‘충주의 영어신동’으로 불리던 그는 충주고 3학년 1962년 적십자사 비스(VISTA) 프로그램의 한국대표 4명에 뽑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미국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충주여고 학생들이 복주머니를 만들었고 충주여고 학생회장이 반기문 학생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그 학생회장이 지금의 아내인 류순택 여사라고 하는군요. 미국으로 간 후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부와 대화를 하는 중 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할 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꿈이 뭐냐고 했더니 스스럼없이 외교관이 되겠다고 했답니다. 그 후 그의 진로는 외교관에 맞춰 진행되게 됩니다.

케네디와의 만남

충주고 졸업 후 청년이 된 반기문은 서울대 외교학과에 들어갑니다. 당시 동창이었던 여성국사장(대우버스주식회사 사장)의 말에 따르면 강의 노트가 정말 꼼꼼하고 하나도 빠지지 않는 어떤 면에서는 교과서보다 더 나았다고 합니다. 동기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서로 보겠다고 경쟁이 치열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반기문은 1970년 제 3회 외무고시에 차석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1971년에 류순택여사와 서울 흑석동 1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게 됩니다.
 

2. 대한민국 외교관 반기문

고시는 차석을 했지만 신입 외교관 연수를 마칠 때 수석을 차지한 반기문은 그의 첫 부임지를 인도 뉴델리로 선택합니다. 모든 외교관들의 1지망이었던 워싱턴을 포기하고 뉴델리로 간 이유는 어머님께 집을 사드리고 싶은 이유였다고 합니다. 위험지에 대한 특별수당을 모아 집을 사드리고 싶었던 것이죠.

이렇듯 한 때의 마시멜로를 참은 반기문에게 평생의 은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 인도대사였던 노신영 전 국무총리를 만나게 되는데 노 전 국무총리는 당시 이런 말을 했을 정도로 반기문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고 하는군요. ‘인도 공관에는 나와 반 서기관만 있으면 된다.’

그후 노신영 국무총리의 발탁으로 인해 의전비서관에 오르게 됩니다. 그의 주요경력을 보면 인도대사관과 유엔 1등 서기관, 유엔과장, 주미대사관 참사관, 미주국장을 거칩니다. 김영삼정부시절 외교부 차관보, 청와대 의전수석비서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에 김대중정부 시절에는 외교통산부 차관을 거쳤으며, 노무현정부에 들어서 외교통산부 장관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3. 반기문 총장의 주요업적
 

사무총장 취임식

그의 그 동안 행적 중 특기할 만한 업적을 보면 93~94년 제 1차 북한 핵위기 때 주미대사관 정무공사로 있으면서 한미간 대북정책 조율 실무총책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97년 때는 그 유명한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 망명 때 밀사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당시 중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황장엽씨의 망명을 성사시킨 주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경력과 업적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반기문 차관에게는 절대절명의 위기의 순간이 있었는데 2001년의 사건입니다. 2001년 2월 한/러 정상회담 합의문에 실문진 실수로 탄도탄요격미사일 제한 조약의 ‘보존과 강화’를 골자로 한 문장이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이 것은 당시 부시행정부가 강력하게 폐기를 주장했던 것으로서 이것 때문에 한국과 미국간의 큰 파문이 일었다고 하는군요. 그 책임으로 반기문 차관은 외교통상부 차관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이러한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는 자가 있었으니 반 사무총장이 ‘내 영원한 보스’라고 부르는 한승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 겸 유엔총회 의장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부름을 받아 2001년 유엔총회 의장비서실장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당시 반 사무총장은 자신에게 있어 외교부의 마지막 보직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오히려 이 때의 경험과 인맥이 오늘날 사무총장 당선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4. 외유내강, 성실, 근면, 책임감, 따뜻한 카리스마

외유내강, 성실, 근면, 책임감, 따뜻한 카리스마…반기문의 주변인들이 그에 대한 평가들을 모은 것입니다. 학생시절부터 꼼꼼한 노트정리로 유명했던 그는 일처리에 있어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되는데 인도대사관 근무시 그가 보여 준 완벽한 일처리와 겸손함이 노신영 국무총리에게 감명을 주었던 것이죠. 우수한 업무능력 외에도 그의 따뜻한 카리스마를 미국 근무시절 같이 일했던 열우당 정의용 의원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주미대사관 시절 반기문 사무총장은 과묵하지만 소신과 원칙이 분명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하고 특유의 성실함으로 교민들의 어려움을 일일이 어루만져주던 사람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외교관들은 영사 업무 맡기를 꺼려하는데 당시 반기문 총영사가 이를 맡아 너무 성실하게 해서 워싱턴 교민들이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꼼꼼한 성격의 모시기 어려운 상사지만 언제나 인정넘치는 언행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쉽’의 소유자이기도 했던 그는 운전사나 청소원, 경호원들에게도 일일이 고맙다는 표시와 따뜻한 말을 해주는 그런 분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5. UN과 반 총장의 권한과 역할

반기문사무총장이 일하게되는 UN에 대해서도 좀 살펴봤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분이 되신 것인가는 그 분이 지휘할 조직을 알게되면 더욱 분명해 질 것입니다.

UN 조직도

현재 192개 회원국이 있는 유엔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은 최고 수뇌부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1961년 아시아 초대이자 UN 3대 사무총장이었던 미얀마의 우탄트에 이어 두번째 아시아 UN 사무총장에 오른 반기문 사무총장의 공식연봉은 기본연봉 약 2억 1천만원에 개인활동을 위한 판공비와 경호비용이 추가로 지급됩니다. 외국방문시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고 24시간 그림자 경호와 별도 관저가 제공됩니다. 임기 5년에 연임이 가능하며 4만명에 이르는 산하기구 직원의 인사권과 약 1조 3천억원의 예산집행권을 갖습니다.

연설하는 반기문총장

 이러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반 사무총장은 각종 국제분쟁지역에서 중재와 화해, 평화의 메신저라는 중책을 맡게 될 것입니다. 속세의 교황, 지구촌의 재상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이면에는 속죄양(Scape Goat) 또는 무능한 전능자라는 우려의 표현도 있습니다. 각 국가들 이해관계 속에, 특히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 외줄타기를 하게되는, 얼굴마담으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동안 반 사무총장이 걸어온 삶의 꼼꼼함과 근면/성실, 따뜻하면서도 마음을 이끌어내는 리더쉽이라면…어쩌면 앞으로 세계는 전대미문의 황금시대가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건 몰라도 올림픽, 월드컵 등 데땅뜨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선두주자로서의 역할은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의 이력과 일화를 정리해 보면서 저는 누구보다도 그런 시대의 도래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향후 일본의 독도침탈이나 중국의 동북공정, 북핵문제 등 우리 주변을 둘러싼 많은 부분에서 어느 정도의 플러스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임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 외교의 파워가 한 층 신장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가 내부적으로 역량을 끌어 올린다면 확실한 선진국 대열에 오르지 않겠는가 하는 전망을 해봅니다. 다음 번에는 이런 좋은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 참고자료
- 동아일보 '반기문장관 남다른 성공스토리'
- 한국경제 '충북 촌놈에서 UN총장까지'
- 뉴시스 보도자료/사진자료
- 중앙일보 '유엔 사무총장 지위와 역할은'
- 한겨레 보도자료
- YTN '내가 본 반기문'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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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09:17 2009/12/2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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